이근원(1879-1965), 자 인천, 자 양계, 설생, 호 곡석, 별서고리공산사람이다. 본적은 산동익도(현재 산동청주)이며, 윈난텅총진(현재 윈난텅총)에서 태어났다. 근대 명사이고 국민당원로다.
광서24년(1898)중 수재, 29년(1903)에 쿤밍고등학당에 입학했다. 이듬해 일본에 유학을 갔고 육군군사를 공부했으며 차례로 진무학당과 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광서31년(1905)에 동맹회를 가입했고 이듬해 봄 윈난일본유학생동맹회회장과 <윈난잡지>사 사장을 맡았다. 선통원년(1909)에 귀국하여 윈난강무당감독겸 보병과교관을 맡았으며 총판으로 승진했다. 무창봉기후 채곤등과 신군호응을 발동하여 대한군정부를 설립하고 군정총장겸 참의원원장을 맡았다. 또한 윈난육군제2사사단장겸 국민군총통을 맡았다. 그후 “2차혁명”에 참가했으며 원세개가 황제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활동과 “0”투쟁등 혁명운동에 참가했다.